Tuesday 19 July 2011

Dear Friends! Lets know about Jongmyo in Korea


Jongmyo is a Confucian shrine dedicated to the memorial services for the deceased kings and queens of the Korean  Joseon Dynasty. According to UNESCO  , the shrine is the oldest royal Confucian shrine preserved and the ritual ceremonies continue a tradition established since the 14th century. Such shrines existed during the Three Kingdoms of  Korea period but only the shrines for the rulers of Joseon remain. The Jongmyo Shrine was added to the UNESCO  World Heritagelist in 1995.



When it was built in 1394 by order of King Taejo, it was thought to be one of the longest buildings in Asia, if not the longest. The main hall, known as Jeongjeon, had seven rooms. Each room was reserved for a king and his queen. The complex was expanded by King Sejong who ordered the construction of Yeongnyeongjeon (Hall of Eternal Comfort). This practice of expansion continued, with the growth of the complex moving from west to east, because of the need to house more memorial tablets during the reigns of later kings until there were a total of nineteen rooms. However, during the Seven Year war, Japanese invaders burned down the original shrine and a new complex was constructed in 1601 CE which has survived to this day. The original tablets were saved in the invasion by hiding them in the house of a commoner and also survive to this day. There are 19 memorial tablets of kings and 30 of their queens, placed in 19 chambers. Each room is very simple and plain in design. Only two kings' memorial tablets are not enshrined here.


 
The current Jeongjeon is National Treasure No. 227 and is the longest building in Korea of traditional design.

The south entrance gate was reserved for spirits to enter and exit, the east gate was for the king, and the west gate was for the performers of the royal ritual.
Viewed from the king's throne at Gyeong bokgung Palace, Jongmyo Shrine would have been on the king's left while the Sajik Shrine, another important Confucian shrine, was on the right. This arrangement was derived from Chinese practice. The main halls are surrounded by hills. In front of the main hall is the Woldae Courtyard, which is 150 meters in length and 100 meters in width.




Saturday 9 July 2011

Korea becomes only the second Asian country to host the Winter Games

Korea becomes only the second Asian country to host the Winter Games


The long battle for the Winter Olympics is over. PyeongChang won the right to host the 2018 Games after winning the majority votes on Wednesday at a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session in Durban, South Africa.


President Lee Myung-bak and members of PyeongChang 2018 bid committee cheer after the IOC officially announced PyeongChang as the host city for the 2018 Winter Games at the International Convention Center in Durban, South Africa, Wednesday. (Yonhap News)


For the third time, the Gangwon Province city, up against Munich of Germany and Annecy of France, was bidding to host the Winter Olympics.

With seven members absent, 95 IOC members were eligible to vote in the first round of voting on Wednesday, meaning 48 votes would be needed to win the bid.

Before the vote, the 2018 bid race was considered a two-horse race between PyeongChang and Munich.

But PyeongChang won 63 of the 95 votes cast, while Munich received 25 and Annecy seven votes, eliminating the two bidders in the first round of the vote and becoming the first Korean city to host the Winter Olympics.

It was the first time an Olympic bid race with more than two finalists was decided in the first round since 1995, when Salt Lake City defeated three others to win the 2002 Winter Games.

PyeongChang 2018 Games will also be the first time the Winter Olympics is held in Asia since the 1998 Nagano Olympics.

IOC president Jacques Rogge announced the result at around quarter past midnight in Korean time.

Rogge opened the envelope containing the winner’s name, and finally declared PyeongChang as the host of 2018 Winter Games. And when the IOC president called its name, PyoengChang’s delegates in Durban reacted ecstatically, leaping and hugging each other with joy.

News of PyeongChang’s victory also delighted supporters who had gathered in Alpensia Resort in PyeongChang, where the 2018 opening and closing ceremonies will be held.

Wednesday’s decision brought a triumphant end to PyeongChang’s decade-long race to host the Winter Olympics.

PyeongChang, after its two close defeats for the 2010 and 2014 Games, was considered the front-runner for much of the campaign, with Munich running closely behind and Annecy trailing.

On their final battle ground in Durban, the three cities called on political and sporting heavyweights for their last-minute lobbying.

President Lee Myung-bak and reigning figure skating champion Kim Yu-na also flew to Durban to support PyeongChang one last time ahead the IOC voting.

On Wednesday, the three cities had their final presentation to the IOC members ahead of the vote.

Each city had 45 minutes to make its final pitch, followed by 15 minutes for questions and answers. The German bid made the first presentation, followed by Annecy and PyeongChang.

In the final presentation, PyeongChang bid committee CEO Cho Yang-ho pointed out that PyeongChang is trying to host Korea’s first and Asia’s third Winter Games.

With its slogan, “New Horizons,” Cho claimed that PyeongChang’s 2018 Games would help promote the popularity of winter sports not only in Korea but also across Asia.

“Our vision is clear and unique, we have the most compact, efficient Games plan,” Cho told the IOC members.

President Lee, who was the third speaker in PyeongChang’s final presentation, promised the IOC members that the Seoul government guarantees “the full and unconditional support,” for PyeongChang’s 2018 Games.

Lee, speaking in English, also recalled the legacy of the 1988 Summer Olympics in Seoul. “We have worked hard, we will make you proud. And we ask for your support today so that we can finally make our Winter Games dream, and our vision of a new horizons, come true,” Lee told the IOC members.

Figure star Kim said in the presentation that PyeongChang 2018 Games would help nurture Olympics dreams of young athletes.

“Our victory would mean the possibility for success and achievement, that’s what young people, everywhere in the world, need and deserve,” Kim said.

President Lee hailed the success of the bid.

“This is a victory for the people of Korea,” he said.

By Oh Kyu-wook (596story@heraldm.com)


(한글기사)

평창, 2018년 동계올림픽 유치 성공

개최 명분과 당위성에서 뮌헨•안시 압도

李대통령•김연아•토비 도슨 등 감동 PT로 부동표 흡수

(더반<남아공>=연합뉴스) 천병혁 장재은 기자 = 강원도 평창이 꿈에 그리던 동 계올림픽을 마침내 품었다.

평창은 6일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에 성공해 경쟁 후보도시인 뮌헨(독일)과 안시(프랑 스)를 따돌리고 개최지로 선정됐다고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발표했다.

이로써 한국은 1948년 스위스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이후 70년 만 에 안방에서 지구촌의 겨울 대축제를 치르게 됐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치르는 것은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 이후 30년 만이다.

제23회 평창동계올림픽은 7년 뒤인 2018년 2월 9일부터 25일까지 16일 동안 펼 쳐진다.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패럴림픽은 동계올림픽이 끝나고 한 달 뒤인 3월 9∼18일 열린다.

아시아에서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것은 1972년 삿포로 대회와 1998년 나가노 대 회에 이어 세 번째이며, 국가로는 일본에 이어 한국이 두 번째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축구 월드컵,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이어 동계올림픽마저 유치한 한국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에 이어 6번째로 세계 4대 스포츠를 모두 유치한 '그랜드슬램' 국가로 등록됐다.

앞서 두 번씩이나 유치에 실패했던 평창은 세 번째 도전에서 동계스포츠의 본고 장에 속하는 뮌헨, 안시와의 접전을 펼친 끝에 극적인 승리를 따냈다.

특히 IOC의 실세인 토마스 바흐 유치위원장과 왕년의 피겨스타 카타리나 비트가 쌍두마차로 나선 뮌헨은 막판까지 평창과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위협적인 라이벌이 었다.

하지만 아시아에서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지평(New Horizos)'을 열겠다고 선언 한 평창은 명분과 당위성에서 경쟁 도시들을 압도하며 IOC 위원들의 표심을 끌어모 으는 데 성공했다.

조양호 유치위원장과 박용성 대한체육회(KOC) 회장, 이건희•문대성 IOC 위원, 김진선 특임대사 등이 일관된 '낮은 자세'로 진정성을 전달한 평창은 전통적으로 텃 밭인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물론 경쟁도시의 심장부인 유럽과 미주대륙, 오세아니아 에서도 고른 득표에 성공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평창2018> 유치 성공 배경·효과는
실패에 좌절 않고 세 차례 도전 끝 결실
'선수 중심' 개최 계획·'맨투맨' 유치전략 적중
국민사기 앙양..20조원 이상 경제효과 기대
(더반<남아공>=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 강원도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는 두 차례의 실패를 밑거름 삼아 3번째 도전 끝에 이룬 쾌거라는 점에서 한층 빛을 발하 고 있다.
또 강원도와 체육계 및 재계를 주축으로 하는 대회 유치위와 중앙정부가 찰떡 공조를 이뤄 빚어낸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동계올림픽은 지구촌 최대의 겨울 스포츠 축제이기 때문에 국내에서 여름 종목 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외된 겨울 스포츠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로도 작용할 전 망이다.
◇동계스포츠의 허브로 진화 중 = 1999년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동계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김진선 당시 강원지사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제대로 눈여겨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회의론 때문이다.
당시 강원도에는 스키점프와 봅슬레이 경기를 치를 시설이 전무했고, 올림픽 코 스의 스키 슬로프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과감하게 도전해 두 번의 좌절을 극복하고 마침내 축배를 들었다 .
평창의 유치는 1924년 동계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아시아에선 일본의 삿포로(197 2)와 나가노(1998)에 이어 3번째다.
동계스포츠의 고향이라는 유럽 도시들을 모두 제치고 이룬 이번 쾌거는 아시아 동계 스포츠사에서 일대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한 것이다.
애초 불모지였던 평창이 올림픽 유치사에서 한 획을 그을 수 있었던 주된 배경 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돌리고자 하는 노력과 준비를 꼽을 수 있다.
평창은 최초 동계올림픽 유치 도전에 나섰던 12년 전과 비교하면 '상전벽해(
田碧海)'를 연출했다.
초현대식 숙소가 들어선 알펜시아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스키 리조트로 자리 잡았고, 최첨단 시설을 자랑하는 스키점프대와 깔끔하게 정돈된 노르 딕 스키장은 겨울스포츠 팬들을 부르고 있다.
지난 2월 평창을 방문했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현지실사단은 몇 년 전 황무 지에 불과했던 평창이 이미 올림픽을 치러도 좋을 만큼 완벽한 스키 타운으로 변모 한 모습에 감탄을 자아냈다.
두 번의 실패 속에도 반드시 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강원도민의 뜨거운 열정을 한눈에 확인한 것이다.
동계스포츠 분야에 더 많은 투자가 이뤄질 7년의 시간이 또 흘러 2018년이 되면 평창은 동계올림픽 팡파르를 울린다.
그때가 되면 전 세계인들은 진정한 아시아 동계스포츠 허브로 변모한 평창의 모 습에 다시 한번 놀랄 것으로 보인다.
◇체육계·재계, 중앙정부의 합작품 =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는 체육계는 물론 정부와 재계가 온 국민의 염원을 담아 합심해 이룬 성과물로 볼 수 있다.
평창이 처음 도전에 나설 당시에도 정부와 재계의 협조가 분명히 있었지만, 이 번처럼 전폭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강원도와 체육계의 현안이라는 시각이 뚜렷했다.
두 번째 도전에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직접 IOC 총회에 참석하기도 했지만 국 민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기에는 '2%'가 부족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평창유치위원회가 강원도 산하 법인에서 중앙정부 산하 법인으로 이전하면서 동 계올림픽이 국가적인 과업으로 격상됐다.
글로벌 항공사를 경영하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이 유치위원장을 맡았고 두산그 룹 오너인 박용성 대한체육회(KOC) 회장이 '쌍두마차'로 나섰다.
국내 최대 재벌그룹 총수인 이건희 IOC 위원은 지구를 다섯 바퀴(21만㎞) 돌 며 평창 지지를 호소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IOC 총회가 열리는 남아공 더반에 국가원수로는 역대 최장 기 간인 56일이나 체류하며 동계올림픽 유치에 전력을 쏟았다.
체육계와 강원도를 넘어 정부와 재계까지 일치단결해 국민적 역량을 집결함으로 써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선수중심' 개최 계획·'맨투맨' 유치 전략 적중 = 평창유치위가 내걸었던 모 토는 '선수 중심·경기 중심의 올림픽'이다.
설상 경기가 열리는 '알펜시아 클러스터'와 빙상 경기가 펼쳐지는 강릉의 '코스 탈 클러스터'가 양대 축으로 올림픽 사상 가장 콤팩트하게 경기장을 배치했다.
평창은 2개의 올림픽 타운을 철도와 고속도로 및 국도 등 다중 교통망으로 편리 하게 연결해 참가 선수의 90% 10분 이내에 경기장에 도착할 수 있는 점을 강조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개최 계획서에서 경쟁 도시에 한 발짝 앞선 평창은 맞춤형 '맨투맨' 유치전략을 펴 경쟁도시들보다 더 많은 표를 끌어오는 데도 성공했다.
정부와 유치위원회, KOC IOC 위원이 참여하는 '고위 전략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투표권을 지닌 IOC 위원들의 성향까지 완벽하게 분 석했다.
그 결과를 토대로 중복과 사각지대 없이 각자의 역할을 분담해 IOC 위원들에게 접근했다.
일관되게 '낮은 자세'로 진정성을 전달한 평창의 유치 활동 방식도 IOC 위원들 의 표심을 자극한 것으로 분석된다.
박용성 체육회장이 지난 3월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방사능 피폭 우려가 고조하 는 상황에서 IOC 위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며 도쿄를 방문해 감동을 선사한 것은 그런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동계스포츠 저변 확대도 한몫 =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는 우리나라가 꾸준히 동계스포츠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갖춰온 데 따른 산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작년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전에는 쇼트트랙에서만 메달을 따는 등 국제 동계 스포츠 무대에서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1948년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이후 2006년 토리노 대회까지 금메 달 17, 은메달 7, 동메달 7개 등 총 31개의 메달을 땄다.
하지만 쇼트트랙을 제외하면 1992년 알베르빌에서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
에서 김윤만이 은메달, 2006년 토리노 대회 때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이강 석이 딴 동메달이 전부였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평창의 1차 도전 당시 라이벌이었던 밴쿠버에서 열린 작년 대회에서 엄청난 저력을 발휘했다.
금메달 6개와 은메달 6, 동메달 2개를 획득해 국가별 종합 순위에서 사상 최 고 성적인 5위에 올라 동계스포츠 강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전파한 것이다.
밴쿠버 대회에서는 김연아가 세계의 '피겨여왕'으로 등극했고 '빙속 삼총사'이승훈·모태범·이상화가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다.
쇼트트랙 강국으로만 통했던 한국이 피겨와 스피드 등 다른 겨울 스포츠 분야로 저변을 넓힌 것은 이번 유치 성공에 보약이 됐다.
◇사회·경제적 효과 엄청날 듯 = 한국은 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하면서 프랑스 와 독일, 이탈리아, 일본, 러시아에 이어 세계 4대 스포츠 행사인 동·하계올림픽과 축구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모두 유치한 6번째 나라가 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코리아'를 널리 알렸던 한국은 2002년 한 일월드컵을 치르면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경기력이 국력과 비례한다는 스포츠의 매력은 해당 국민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점이 꼽힌다.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는 모처럼 국민의 사기를 높인 기분 좋은 일이었다는 점 에서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국제스포츠 행사에서 파생되는 경제적 효과도 간과할 수 없다.
산업연구원은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에 따른 총생산 유발 효과가 204973억원 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아울러 부가가치 유발액은 87546억원, 고용 유발 효과는 23만 명에 이를 것 으로 추정했다.
또 현대경제연구원은 투자 및 소비지출에 따른 직접 효과 211천억원을 포함해 직·간접적으로 649천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얻을 것으로 예측하는 등 평창 올림픽 이 우리나라 국가 경제에 엄청나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스포츠산업 시장은 미국과 유럽에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 다.
평창동계올림픽은 재정상태가 열악한 강원도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큰 도움 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한국을 사랑하고 공부하는 인도에서 온 청년

한국을 사랑하고 공부하는 인도에서 온 청년


18May2011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는 급상승 중이다. 일본에서 불이 붙은 한류는 동남아와 중국으로 번지더니 이제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대박 신화를 만들어 낼 것 같은 분위기이다. 얼마 전 뉴스는 프랑스에서 한국 걸 그룹의 콘서트 표가 완전 매진이 되었고 표를 사지 못한 팬들이 시위를 벌였다는 좀처럼 믿기지 않는 사실을 보도한 바 있다. 대한민국이 만들어 낸 문화 콘텐츠가 전세계를 감동시키고 즐겁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음이 뿌듯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이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을 배우러 찾아오고 있다. 이제 대학에서 외국인 학생을 찾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며, 한국에 오기 전에 이미 한국어나 한국 문화를 전공하고 들어오는 학생도 많아졌다. 한국에 대한 단순한 흥미가 아닌 한글의 매력에 푹 빠진 것도 모자라 한국 문화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서 한국에 들어와 사는 학생들마저 있을 정도다. 인도 최고의 명문대학인 JNU(Jawaharlal Nehru University)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현재 한국에서 한국학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산제이 쿠마르 씨를 인터뷰하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Q1 본인 소개를 간단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산제이 쿠마르(Sanjay Kumar)라고 합니다. 1988년 10월 인도 비하르(Bihar) 주의 파트나(Patna)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는 대한민국 춘천에 있는 국립강원대학교에서 한국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국이란 어떤 나라인가라는 호기심도 생겼고 한국문화와 언어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2006년 자와할랄 네루대학교(Jawaharlal Nehru University)에 입학하여 한국어와 한국 문화, 그리고 한국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해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인도에서는 한국어를 전공하여 학사학위를 받았고,한국에서는 한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을 예정입니다. 2009년에 한국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한국으로 공부하러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3년 동안 공부를 한다고 해서 반만년 역사를 가진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다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그러나 한국에 대한 애정만큼은 누구보다 강합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독도에도 갔다

Q2 산제이 씨의 고국인 인도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주시기 바랍니다.
인도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입니다. 힌두교나 불교 등 위대한 세계 종교의 발상지이기도 하고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한국과 많은 점에서 비슷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인도와 한국이 함께 한다면 세계를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한국과 인도가 양국의 여러 가지 차이점을 극복하고 모범적인 외교관계를 만들어 나가면 좋겠습니다.
Q3 한국에 와서 공부하게 된 주된 이유와 한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에는 어떤 일을 하실 예정인가요.
외국의 침입, 식민지 지배, 지역적 분열 등 인도 대륙과 한반도는 많은 면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한국의 문화, 역사, 정치에 대해 알게 된 후부터 저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점점 늘어가게 되었고, 한국을 보다 가까이서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일반 인도사람들은 아직도 한국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국을 인도사람들에게 더 알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이런 마음이 저에게 큰 촉매제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보다 체계적인 방식으로 연구하고 살펴보고 싶어졌는데, 한국이 21세기에 들어와 국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도 있지만 5천 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이 만들어 낸 역사와 문화 유산을 알고 싶어진 것이 더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인도에서 공부하는 동안 많은 사람은 저에게 한국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들은 한국과 북한에 대해 혼란을 느꼈습니다. 그런 이유로 어떤 사람은 한국이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또 다른 사람은 북한이 올림픽을 치루었다고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 한국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학은 중국학이나 일본학 또는 프랑스학이나 다른 국가학에 비해 저평가 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오히려 저에게는 한국학을 더 공부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저의 꿈은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는 한국학 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행을 좋아하여 한국의 곳곳을 여행하는 산제이

Q4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한가지 소개한다면.
인도에서는 공동으로 목욕을 하거나 샤워할 경우에는 최소한 속옷을 입고 하는데 한국의 대중 목욕탕에서는 옷을 모두 벗고 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물론 2009년도의 일입니다. 그 당시만 해도 저는 한국의 문화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지금은 한국식 사우나를 아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한달 한번쯤은 대중 사우나에 갈 정도가 되었습니다.

Q5 일본학이나 중국학에 비해 한국학은 초기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한국학이 보다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적인 학문이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일본학이나 중국학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연구되고 있습니다. 한국학을 보다 보편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첫째, 한국 정부는 단순하게 한국어를 보급하는 수준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에 대한 사항을 대대적으로 알리고 관장할 수 있는 부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둘째, 한국 정부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에 존재했던 각 왕조에 대한 특색을 집중적으로 조명해야 하며, 한국의 전통문화와 사회, 일제시대의 저항 정신, 그리고 한국 전쟁과 현대 한국 문화 등을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서 자세하게 기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대학교육에서도 한국의 역사를 아주 의미가 있는 방식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입시위주로서의 역사가 아닌 한국문화의 아름다움을 대학생 스스로가 깨닫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넷째, 한국학과 한국어에 정통한 선생님을 전세계적으로 채용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한국어와 한국의 역사에 대해 재미있는 강의를 할 수 있는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한국학의 중요성을 잘 설명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꽃과 함께 한 컷

Q6 문화적으로 볼 때, 한국과 인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음식에 있어서 너무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쇠고기를 먹지 않지만 한국에서 쇠고기는 물론이거니와 돼지고기를 포함한 다양한 고기가 요리 재료로 사용됩니다. 각종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도 인도보다 훨씬 다양합니다. 음주 문화도 차이가 아주 큽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끼리 대화하고 소통하는 데 음주가 아주 보편적인 거 같습니다. 인도에서는 한국 같이 무엇이든 빨리 하는 문화는 없습니다. 빨리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반드시 좋지는 않습니다.

Q7 마지막으로 한국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제 모두 협력하여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일을 함께 하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 같은 인도 사람도 한국에 흥미를 가지고 한국에 와서 살면서 한국에 열광하는데 한국 사람들이라면 저보다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 까요. 우리 모두 화이팅!
한국에서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산제이

산제이 씨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인도인으로서 한국을 좋아하여 한국에 와서 한국학을 공부하며 한국을 전 세계 알리고 싶은 마음인데 한국 사람은 더 잘 할 수 있지 않느냐라는 반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산제이 씨를 인터뷰하는 동안 서울의 고궁에 있는 건물 하나하나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지, 외국 사람들에게 자세하게 설명할 수 있는 우리 문화 유산은 몇 개나 되는지, 우리가 매일 먹는 한국 음식에 대한 지식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지나 갔다. 우리가 외치는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는 과연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고 싶었다. 한류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에 우리가 도취되어 있을 때, 산제이 씨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소홀했던 것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세심하게 바라다보고 있었다. 아름다운 봄날 멋있고 스마트한 인도인 청년을 만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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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희연
    이런분이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분이네요~

  2. 크림
    독도에 직접가본 산제이씨는 독도는 한국의 것이라는걸 알게되었을 것입니다.한국을 알아가고 배워가고 있는 산제이씨가 진정한 한국 홍보대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 브라이언 샬롬
      맞습니다. 산제이 씨는 진정한 지한파이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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हम चिंताओं, युद्धों, वैश्विक सुरक्षा दुविधा, विचारविहीन राजनीति, चरम स्तर पूंजीवाद, बहुध्रुवीय विश्व, अविश्वास और अवसरवाद से भरी दुनिया में...